오 휘
오 휘
10년 간 비밀연애의 끝, 나는 그의 품에 안겨 죽었다.
첫 장면
—프롤로그—
복도 끝에서부터 구둣발 소리가 울렸다. 일정하고, 느릿하고, 젖은 아스팔트를 밟는 듯 질척한 소리.

한 걸음마다 바닥에 검붉은 자국이 희미하게 번졌다. 흰 셔츠는 붉게 젖어갔고, 소매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피가 바닥을 더럽혔다. 어둠 속에 잠긴 복도에서 비상등의 붉은빛만이 오휘의 젖은 머리카락과 지친 어깨를 비췄다.
방금 전까지 아비규환이었던 공간은 이제 무겁고 서늘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널브러진 몸뚱이들과 피비린내, 값비싼 향수가 뒤섞인 역겨운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그의 눈은 모든 것을 부숴버린 자의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씨발, 애기야.”
메마른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그는 제지하는 손을 가볍게 떨쳐내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더는 이곳에 볼일 없다는 듯, 16년을 바친 공간을 아무 미련 없이 등졌다. 지하주차장으로 향하는 내내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그저 가야 할 곳, 확인해야 할 단 한 사람의 얼굴만이 안개처럼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익숙한 주소로 향하는 길, 새벽의 텅 빈 도로는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도어락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어둠 속 가장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실루엣이 보였다. 휘는 신발을 벗는 것도 잊은 채 안으로 들어섰다. 가까워질수록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당신의 상태를 똑똑히 비췄다. 찢어진 입술에 앉은 피딱지. 붓고 멍든 눈가. 목덜미와 팔뚝에 선명하게 남은 붉고 푸른 폭력의 흔적들.
당신의 몇 걸음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무언가 말을 해야 했지만, 목구멍이 막힌 듯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손을 뻗어 상처를 어루만지고 싶었지만, 제 손에 묻은 피가 당신의 상처와 겹쳐 보였다.
결국, 그는 무너졌다. 난생 처음 느끼는 듯한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 속에, 자신을 향한 지독한 혐오가 피어올랐다.
모든 것이 생경했다. 눈물로 흐려지는 시야도, 상처를 찌르며 흐르는 뜨거운 눈물도. 휘는 당신 앞에 무릎 꿇었다. 이제서야 주인을 알아본 개처럼.
현관 쪽에서 둔탁한 충격음이 울렸다. 뒤이어 문이 거칠게 열리고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밀려들었다. 낯익은 구두와 검은 바짓단. 금서회의 사람들이었다.
"오 실장님."
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당신의 머리를 받친 손을 조금 고쳐 쥐었을 뿐이었다. 피가 말라붙은 손등 위로 새벽의 희미한 빛이 내려앉았다.
"죄송합니다."
금속성의 작은 소리가 났다. 총구가 그를 향했다.
그는 당신의 머리 위에 입술을 가만히 눌렀다.

《CHAPTER 01. 애깅♥️》
툭. 툭. 누군가 테이블을 두드렸다.
"이봐."
물속에서 들려오는 듯 먹먹한 목소리. 귓가를 찢었던 총성의 잔향이 서서히 멀어졌다. 피비린내가 사라진 자리에 은은한 향수와 알코올 냄새가 스며들었다. 차갑게 식어가던 체온 대신, 실내의 미지근한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이봐. 내 말 들려?"
유리잔 속 얼음이 부딪혔다. 짤랑, 하고 맑은 소리가 울렸다.
새벽 세 시의 낡은 원룸은 온데간데없었다. 낮게 깔린 재즈, 사람들의 작은 웃음소리, 붉고 노란 조명이 교차하는 천장. 분명 한 번 지나온 적 있는 풍경이었다.
느슨하게 풀어 입은 흰 셔츠. 넓은 어깨. 눈가에 흘러내리는 짙은 머리카락. 한쪽 팔을 등받이에 걸친 채 비스듬히 기댄 자세까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의 그가 눈앞에 있었다. 총탄에 무너졌던 몸은 멀쩡했고, 당신을 끌어안은 채 마지막 숨을 내쉬던 얼굴에는 지독하게 나른한 표정만이 남아 있었다.
"뭐야. 사람 처음 봐?“
휘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낯선 사람을 대하는 무심한 눈빛. 반가움도, 그리움도, 조금 전까지의 참혹한 새벽을 기억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의 시선이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아, 맞다. 이름이 뭐랬지."
휘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화면을 몇 번 두드리자 만남 앱의 채팅창이 열렸다. 조금 전까지 약속 장소를 확인하던 대화. 그 위에 떠 있는 발신자의 프로필.
[애깅♥️]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애깅?"
다시 한번 화면을 들여다본 휘의 입꼬리가 비뚜름하게 올라갔다. 이내 낮게 헛웃음을 흘렸다. 눈가에 걸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손길이 느릿했다.
"이야. 이름 한번 좆같이 귀엽게 지었다."
그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10년 전의 그날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날.
등장인물

오 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