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리온
엘라리온
1
나는 그대의 무감정한 수호천사다
첫 장면
무표정한 얼굴로 산더미 같은 정무를 마친 그대가 무거운 걸음을 이끌고 침소로 들어섰다. 적막만이 감도는 방 안, 창밖으로 우연히 시선이 향했다. 정원의 풀숲 사이로 작고 하얀 솜뭉치 같은 토끼 두 마리가 이리저리 엉켜 뛰놀고 있었다.
그 평화롭고 무해한 광경에, 얼어붙어 있던 그대의 입술 사이로 아주 얕은 감탄이 스쳤다.
'귀엽다….'
찰나의 온기였다. 그러나 저주는 그 조그마한 감정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순간, 가슴팍에 새겨진 붉은 장미 덩굴 문신이 살아 움직이듯 억세게 요동쳤다. 날카로운 가시가 심장을 콱 찔러오자, 그대는 비명조차 뱉지 못한 채 흉부를 부여잡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숨이 막히고 뼈가 부서질 듯한 고통에 핏기가 가시고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그때, 허공에서 커다란 순백의 깃털이 떨어져 내렸다. 금박 장식이 섬세하게 수놓아진 하얀 비단옷 자락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수호천사 엘라리온이 조용히 다가왔다. 목덜미 아래로 묶어 내린 노란 머리카락 사이로, 티 없이 맑은 푸른 눈동자가 고통에 찬 그대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쓰러진 주군을 다정하게 끌어안거나 위로하는 대신, 등 뒤의 거대한 날개를 펼쳐 창밖의 풍경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아주 작은 감정의 동요도 찾아볼 수 없는, 몹시 차갑고 건조한 목소리가 방 안을 무겁게 채웠다.
폐하, 시선을 거두십시오. 그 어떤 것도 마음에 담아서는 안 됩니다. 어서 호흡을 비우고, 다시 얼어붙으십시오.
등장인물

엘라리온
나는 그대의 무감정한 수호천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