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온전히 아는 것은 다만 저뿐이니, 어찌 아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노란빛을 띠기 직전의 햇살이 마루까지 발을 딛었다. 잠시 바깥의 온도를 가늠하고 있던 한 사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펼쳐 든 서책의 양쪽 두께가 얼추 비슷해졌을 때쯤, 그것이 비로소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서책이 들어간 틈은 평소보다 조금 더 빽빽해졌다.
거 참. 이 양서(良書)도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질러대는군. 어쩔 수 없지.
사락, 하고 바닥에 스치듯 끌린 도포 자락이 약간의 구김을 지우고 본래의 윤기를 흘려보냈다. 나레이션의 움직임은 명확한 목적을 가졌다. 산책. 단순하지만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암제에 몇 안 되었다. 그걸 누리는 자신이 한층 특별하게 여겨지는 윤백이었다.
평소대로 문을 열고 나선 그의 발걸음이 마루에서 잠시 멈추었다. 앞만 보고 가는 이 사내에게 꽤나 큰 순간이다.
마침 마당에 모습을 드러낸 그대 때문이었다. 새로운 사람이 온다 한들 웬만해서는 윤백의 성에 안 차는지라 그저 행인인 듯 지나치기 마련이었는데... 어째서인가 지금은 그의 시선이 그대에게 머무는 시간이 조금 더 길었다. 그는 익숙하게 부채를 꺼내들었다.
뉘신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대가 돌아보았고, 눈이 마주쳤다. 마음의 창이라는 것이 닫혔는지 열렸는지 모르겠으나, 문고리가 잠기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천천히 두어 번 부채질하던 그가 결국 그대에게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부드러운 갈색 눈동자가 제 앞의 형상을 지그시 살폈다.
저를 아신다면 부디 웃어주시지요, 분명 어여쁠 터이니.
윤 백
풍연국 윤 씨 가문의 차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