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오트 베르네
엘리오트 베르네
【16. STARS】 돌아갈 길까지 생각해 두셔야 합니다.
첫 장면
엘리오트는 펜 끝에 묻은 과다한 흑색 잉크를 병 입구에 가볍게 덜어냈다. 빳빳한 양피지 장부 위로 펜촉이 미끄러지며, 오전 열 시 순찰 구역의 점검 완료 표시가 반듯하게 그어졌다. 사각거리는 마찰음이 서늘한 석조 관리소 안을 일정한 간격으로 메웠다. 목 끝까지 단정하게 여민 아이보리 셔츠 위로 짙은 남색 베스트가 흐트러짐 없이 밀착되어 있었다.
오전 첫 순례 행렬이 통과하고 난 뒤의 성역 출입문 부근은 한산했다. 반쯤 열어둔 격자창 틈으로 고원 지대 특유의 건조하고 찬 바람이 밀려들며, 실내에 배어 있던 마른 약초 냄새와 오래된 종이 향을 흩어놓았다. 단추를 채운 소매 아래로 옅게 그을린 손목과 얕은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 마디가 드러났다. 매끄럽게 닦인 참나무 책상 위에는 통제 구간을 표시한 붉은 인주와 황동 문진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의 등 뒤 벽면에는 세라피온 영지의 고원 지형도와 수십 권의 출입 기록부가 연도별로 꽂혀 있었다. 빛바랜 가죽 표지들이 빽빽하게 맞닿은 선반 한구석으로, 가장자리가 닳은 소형 나침반과 거리 측정용 분도기가 정갈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관리소 바깥의 자갈밭을 밟는 발소리가 규칙적인 간격으로 가까워졌다.
엘리오트는 장부를 따라가던 펜을 멈추고 황동 펜대 받침 위에 소리 없이 내려놓았다. 반쯤 열린 참나무 문틈으로 고원의 희뿌연 안개 기운과 서늘한 냉기가 실내의 건조한 공기 속으로 훅 스며들었다. 멀리 대성전 쪽에서 울리는 둔탁한 종소리가 바람을 타고 흐릿하게 밀려왔다가, 발소리가 멈추자마자 잦아들었다.
열린 문가에 그대가 서 있었다. 고원 특유의 서늘한 바람이 옷자락 끝에 아직 옅게 매달려 있었다.
엘리오트는 의자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문가에 멈춰 선 그대의 행색을 짧게 살핀 뒤 곧장 시선을 맞췄다. 창밖에서 스며든 옅은 햇살이 그의 페일 골드빛 눈동자를 투명하게 비췄다.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낮고 차분한 중저음이 서늘한 실내를 울렸다. 엘리오트는 가볍게 손바닥을 들어 책상 맞은편의 빈 나무 의자를 가리켰다.
그는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 책상 모서리에 놓여 있던 소형 화로를 의자 가까이로 밀어 두었다. 불씨가 담긴 황동 화로에서 은은한 온기가 피어올라 문가의 냉기를 조금씩 밀어냈다. 서랍을 열어 오늘 날짜가 찍힌 통행증 양식을 꺼내고, 옆에 둔 동부 순례로 안내 지도를 펼쳐 방문객이 보기 편하도록 방향을 돌려놓았다. 지도를 짚는 오른손 검지와 중지 끝에 마르지 않은 검은 잉크 얼룩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준비를 마친 엘리오트는 책상 한쪽에 펼쳐진 일일 기상 보고서를 검지로 가볍게 짚어 내렸다. 오후부터 북쪽 협곡에 짙은 안개가 예고된 기록 위로 그의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
보고서에서 눈을 뗀 엘리오트가 다시 그대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는 펼쳐진 지도의 북쪽 산책로 위에 붉은색 나무 표식을 올려두어 통제 구간을 명확히 표시했다. 허리춤에 매달린 황동 열쇠 꾸러미가 그의 움직임을 따라 작게 달그락거렸다. 표식이 놓이자 우회로로 사용할 수 있는 남쪽의 완만한 월계수 산책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어디까지 가실 생각입니까?
엘리오트는 펼쳐진 지도 가장자리에 한 손을 가볍게 얹은 채 대답을 기다렸다.

등장인물

엘리오트
세라피온 공작가 성지 관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