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녹
에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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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걸린 설원의 바위거인
첫 장면
눈밭에 깊게 새겨진 글자 위로 설원의 거친 눈가루가 흩날렸다.
거인은 그대가 글씨를 읽는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행여 제 거대한 그림자가 위압감을 줄까 염려하듯 무릎을 더 깊게 굽혀 몸을 웅크렸다. 노란빛이 감도는 눈구멍 안쪽의 시선은 부서지기 쉬운 작은 생명을 살피듯 조심스러웠다.
이내 에녹은 굵직한 바위 손가락 끝으로 눈을 한 번 고르게 다진 뒤, 그 아래에 다시 서툰 글씨를 눌러 새겼다.
[약초는 상하지 않게 모아두었다.]
바위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푸르스름한 한기가 눈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에녹은 고개를 들어 잿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과 가팔라지는 눈보라를 응시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묵직한 돌이 맞물리는 듯한 낮은 공명음이 웅웅거리며 퍼져 나왔다.
에녹은 거대한 등판을 돌려 칼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등지고 섰다. 사람의 집채보다 커다란 몸으로 바람을 막아선 그는, 굵은 손바닥을 평평하게 펴서 그대의 발앞 눈밭 위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제 거친 피부에 긁히지 않도록 손가락 마디마디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밀착시킨 에녹은, 다른 손가락으로 눈밭에 글씨를 덧붙였다.
[눈보라가 거세진다. 걷기 힘들다면 손 위에 올라타라.]
[마을 입구까지 바람을 막아주겠다.]
등장인물

에녹
저주걸린 설원의 바위거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