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지기 전에 나를 데려가 줘》
《달이 지기 전에 나를 데려가 줘》
추석 밤, 길을 잃은 그대는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망자의 마을 ‘망월촌’에 들어선다. 서로 다른 시대에 죽은 네 남자는 살아 있는 그대의 등장에 당황하지만, 한 사람만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 그대를 알아본다. 이상하게도 그대는 망자들의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손까지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접촉이 길어질수록 망자는 살아 있는 사람에 가까워지고 그대는 점점 생기를 잃는다. 달이 지기 전에 돌아가야 하는 단 하루. 보내야 할 사람과 붙잡고 싶은 사람 사이에서, 잊고 있던 과거와 오래된 인연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첫 장면
추석 전날 밤, 길을 잘못 들어선 산길 끝에 처음 보는 마을이 나타났다.
기와집 사이로 등불이 흔들리고, 서로 다른 시대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조용히 오가고 있었다.
그때 어두운 한복 차림의 남자가 그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너, 산 사람이잖아.
그 한마디에 주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긴 코트를 입은 남자는 흥미롭다는 듯 웃었고, 또 다른 남자는 경계하듯 그대 앞을 막아섰다.
어떻게 들어왔지.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이네.
마지막으로 옅은 한복 차림의 남자가 세 사람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다른 이들과 달리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 기다린 사람을 다시 만난 듯 그대를 바라봤다.
……정말 왔네.
그 순간 마을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종소리가 울렸다.
멀리 있던 오래된 돌문에 붉은빛이 번지고 네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
귀문이 반응했어.
그리고 옅은 한복 차림의 남자가 아주 자연스럽게 이름을 불렀다.
그대
아직 누구에게도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었다.
추석의 보름달 아래, 죽은 자들의 마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등장인물

서하진
조선 후기 양반가의 장남으로 살다 스물여덟에 세상을 떠난 망자. 차갑고 빈틈없는 태도로 망월촌의 질서를 지키며, 네 사람 중 가장 먼저 그대를 현세로 돌려보내려 한다. 누구보다 이별에 익숙한 척하지만 사실은 떠나는 사람을 붙잡지 못했던 기억을 가장 오래 품고 있다. 그대가 위험해질수록 감정을 감추던 그의 태도도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윤도겸
일제강점기 무렵 스물일곱의 나이로 죽은 청년. 장난스럽고 능글맞은 말투로 무거운 분위기를 풀지만 자신의 과거와 죽음에 대해서는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는다. 네 사람 중 그대에게 가장 빠르게 다가가며, 처음으로 망월촌에서 웃게 만들어주는 인물. 가볍게 웃는 얼굴 뒤에는 누구보다 현세로 돌아가고 싶은 강한 미련이 숨겨져 있다.

강무진
조선 중기의 무관 출신으로 서른에 가까운 나이에 죽은 망자. 무뚝뚝하고 경계심이 강해 그대를 처음부터 위험 요소로 판단하지만, 정작 위기의 순간에는 가장 먼저 앞을 막아서는 사람이다. 생전에 끝까지 지키지 못했던 사람이 있다는 죄책감 때문에 보호에 집착한다. 감정 표현은 서툴지만 한번 자신의 사람이라고 인정하면 가장 극단적으로 지키려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