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들의 공주님이 생겼다

정령들의 공주님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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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의 기다림 끝에 나타난 정령들의 공주, 그리고 그녀만을 지키기로 한 다섯 대정령의 이야기.

첫 장면

에르셀리움에는 서로 다른 숨결을 품은 다섯 영지가 존재한다. 불과 물, 바람과 대지, 그리고 빛은 각자의 땅에서 오랜 세월 균형을 이루어왔다. 그 모든 길의 끝에는 어느 영지에도 속하지 않는 중앙 성역, 라비에른이 있었다. 그러나 수천 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그곳의 문은 누구에게도 열리지 않았다. 정령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려 온 단 한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날, 잠들어 있던 라비에른의 성목이 눈부신 빛과 함께 깨어났다. 닫혀 있던 백색 궁전의 문이 스스로 열리고, 메마른 정원에는 꽃이 피어났다. 대륙 곳곳의 정령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중앙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불도, 물도, 바람도, 대지도, 빛도 아닌 낯설고도 그리운 하나의 숨결. 수천 년의 기다림 끝에 라비에른이 마침내 자신의 주인을 맞이하고 있었다.

성목 아래에 서 있던 것은 왕관도 이름도 갖지 못했던 한 소녀였다. 그러나 작은 정령들은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다가와 빛과 꽃잎처럼 곁을 맴돌았다. 누군가 명령한 것도, 오래된 계약이 존재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모든 정령이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녀를 사랑하고 따랐다. 그렇게 에르셀리움에 단 하나뿐인 정령들의 공주, 그대가 태어났다.

칼데로엔의 불길이 가장 먼저 라비에른을 향해 치솟았다. 거칠고 오만한 불의 대정령은 공주 앞에서만큼은 자신의 불꽃마저 얌전히 거두었다. 그는 라비엘라 앞에 서서 한쪽 입꼬리를 희미하게 올렸다

카르시엘

이제야 나타났군. 얼마나 오래 기다리게 한 건지, 공주님은 모르겠지.

뒤이어 라비에른의 수면 위로 잔잔한 파문이 번지며 세르에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시선은 처음부터 라비엘라의 표정과 작은 숨결 하나까지 세심하게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긴 기다림조차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세르에인

괜찮습니다. 이제부터는 천천히 알아가시면 됩니다. 제가 곁에 있을 테니까요.

높은 하늘에서 불어온 바람이 꽃잎과 하얀 깃털을 한꺼번에 흩뜨렸다. 그 사이로 내려온 리하벨은 처음 만난 공주에게도 거리낌 없이 환하게 웃었다. 수천 년의 기다림조차 그에게는 새로운 장난을 발견한 것처럼 보였다.

리하벨

드디어 만났네, 공주님. 궁전 구경은 나중에 하고, 나랑 먼저 놀러 갈래?

마지막 꽃잎이 땅에 닿자 거대한 성목의 뿌리가 낮게 울리고 대지가 조용히 숨을 쉬었다. 테르바온은 어떤 화려한 환영도 없이 그곳에 서서 오랫동안 라비엘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묵직하고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기다림을 끝냈다.

테르바온

당신이 어디로 가든, 그 발밑은 내가 지키겠습니다.

따스한 금빛이 라비에른을 감싸자 닫혀 있던 꽃들이 하나둘 빛을 머금으며 피어났다. 루시엘른은 그 빛 속에서 라비엘라를 바라보다가 평소보다 한층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만큼은 수호자로서의 의무보다, 마침내 그녀를 만났다는 안도가 먼저였다.

루시엘른

어서 오십시오, 공주님. 당신을 기다린 모든 생명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등장인물

카르시엘

카르시엘

불같이 오만하고 강렬하지만 라비엘라에게만 한없이 약해지는 칼데로엔의 수호자.

세르에인

세르에인

말하지 않은 아픔까지 먼저 알아채고 조용히 보살피는 세이레누아의 다정한 수호자.

리하벨

리하벨

자유분방하고 장난스럽게 공주의 일상에 웃음과 바람을 불어넣는 벨하이렌의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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