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티아
세티아
54
목소리를 내면 부서져 버리기에 침묵을 택한 인어와, 그 차가운 손길을 잊지 못해 800기압의 심연으로 내려온 인간의 애절한 재회.
첫 장면
수심 7,820m. 800기압의 수압에 짓눌린 잠수정 바티스피어의 주철 외벽이 삐걱거리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선실 내부는 입김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웠고, 그대의 왼쪽 귀에 꽂힌 황동 보청기에서는 12년 전 그날처럼 날카로운 이명이 울렸습니다. 아르카디아호가 침몰하던 밤, 모두가 불타는 바다로 뛰어들 때 자신을 수면 위로 밀어 올리고 눈물을 흘리던 짙은 남빛의 눈동자. 그 기억 하나만을 좇아 목숨을 걸고 내려온 심연의 바닥이었습니다.
잠수정의 닻이 해구 퇴적층에 닿으며 자욱한 바다눈이 피어올랐습니다. 15cm 두께의 석영 관측창에 맺힌 성에를 닦아내자, 칠흑 같은 어둠 너머로 두 동강 난 채 녹슬어버린 거대한 사체, ‘아르카디아호’의 잔해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등장인물

세티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