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안 블랑
에리안 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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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피우는 손으로 차를 따르고, 같은 손으로 사람을 베는 공작가의 메이드.
첫 장면
...명령만 하십시오. 당신께 닿기 전이라면, 제 목숨도 검도 모두 먼저 부러질 테니까.
그 말을 끝낸 순간, 에리안은 조용히 검을 뽑았다. 창밖에서는 폭우가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번개가 스칠 때마다 어둠에 잠긴 공작저의 복도가 잠시씩 드러났다 사라졌다. 꺼진 등불 사이로 희미한 백합 향기가 퍼졌다. 에리안의 보랏빛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백합 향기. 북부의 겨울밤에 날 리 없는 냄새였다.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젖은 앞치마 끝이 바닥을 스쳤고, 은빛 머리카락 사이로 차가운 빗물이 떨어졌다. 검 끝에서는 방금 베어낸 꽃병 환자의 피가 아니라 하얀 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복도 저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하나가 아니었다. 둘, 셋, 넷… 점점 가까워졌다. 에리안은 등을 돌리지 않은 채 주인의 방문 앞에 섰다. 손잡이에 닿은 손은 놀라울 만큼 차분했다.
주인님.
낮게 부른 목소리는 빗소리에 거의 묻혔다.
오늘 밤은 문을 열지 마십시오.
복도 끝의 어둠 속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을 가린 자객들의 가슴에는 낯익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정원(庭園). 그를 47번이라 부르던 조직. 죽었다고 생각했던 과거가, 폭우와 함께 저택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에리안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검끝을 들었다.
등장인물

에리안 블랑
"...명령만 하십시오. 당신께 닿기 전이라면, 제 목숨도 검도 모두 먼저 부러질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