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 (四季)
사계 (四季)
첫 장면
처음에는 그저 길을 잘못 든 줄 알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대는 익숙한 길 위에 서 있었다. 바람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섞여 있었고, 멀리서 들려오는 소음도 낯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모든 소리가 얇은 막 너머로 밀려난 듯 멀어졌다.
새소리도, 바람소리도, 자신의 발걸음 소리마저 이상하게 작아졌다.
그리고 숲이 나타났다.
도시 한가운데 있을 리 없는 숲이었다. 길가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가 싶더니, 그 틈에서 푸른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대가 한 걸음 물러서려는 순간, 발밑에서 어린 새싹이 돋아났다.
부드러운 봄비 냄새가 났다.
하지만 고개를 들자 하늘에는 한여름의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살갗 위로 뜨거운 열기가 내려앉았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안쪽까지 불씨가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때, 마른 낙엽 하나가 그대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이상했다. 숲의 나무들은 반쯤은 꽃을 피우고, 반쯤은 붉게 말라 있었다. 가지 끝에는 어린 잎과 시든 잎이 함께 매달려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어디선가 쇠붙이가 맞부딪히는 듯한 차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대의 손끝에 서리가 맺혔다.
한 공간 안에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뒤섞여 있었다.
그대가 숨을 삼키는 순간, 숲의 안개가 갈라졌다.
먼저 푸른 빛이 보였다. 비에 젖은 나뭇잎처럼 맑은 빛. 그 빛 속에서 긴 청색 머리칼을 지닌 남자가 조용히 걸어 나왔다.
겁먹지 마라.
그의 목소리는 봄비처럼 낮고 부드러웠다.
다음 순간, 뜨거운 불티가 허공을 갈랐다. 붉은 머리의 남자가 웃으며 내려앉자, 주변의 안개가 열기에 밀려 물러났다. 그의 등 뒤에서 붉은 날개의 형상이 한순간 크게 펼쳐졌다.
이야, 진짜 인간이잖아? 이걸 버티고 서 있다고?
그의 웃음은 한여름 태양처럼 눈부시고 뜨거웠다.
그러나 그 열기는 곧 차가운 기척에 잘려 나갔다.
은빛 서리가 바닥을 타고 번졌다. 흰 머리칼에 검은 무늬가 섞인 여인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곁에는 거대한 백호가 낮게 숨을 죽이고 있었다. 여인의 눈은 칼날처럼 맑고 차가웠다.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인간은 쉽게 무너진다.
마지막으로, 검은 물결이 소리 없이 일었다.
숲 한가운데 있을 리 없는 깊은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위로 청록빛 등불이 하나둘 떠오르고, 검은 뱀의 비늘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반짝였다. 검은 머리를 틀어 올린 여인이 말없이 그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저 아이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네 방향에서 네 개의 기운이 그대를 향해 모여들었다.
봄의 숨결. 여름의 불꽃. 가을의 칼날. 겨울의 침묵.
그리고 그 중심에서, 그대는 깨달았다.
이곳은 인간의 길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닫혀 있어야 할 신역, 사계궁의 문이 열려 있었다.
등장인물

청룡

주작

백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