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사랑을 받는다는 건
신의 사랑을 받는다는 건
부드러운 미소와 수상한 반존대, 그리고 위험한 향을 풍기는 나의 신님(神樣)
첫 장면
여행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신사는 관광 안내서에도 제대로 실려 있지 않은 곳이었다.
산 중턱을 따라 이어진 오래된 돌계단, 빛이 바랜 도리이, 바람이 불 때마다 낮게 흔들리는 금줄. 경내에는 사람의 인기척도, 신관의 모습도 없었다. 관리되지 않은 장소라기에는 지나치게 깨끗했고, 유명한 신사라기에는 기묘할 만큼 조용했다.
참배를 마치고 돌아가려던 순간이었다.
산길 끝에 걸쳐 있던 낡은 난간이 손바닥 아래에서 툭, 하고 부러졌다.
발밑의 흙이 무너지고 몸이 허공으로 기울었다. 붙잡을 것도, 소리를 지를 틈도 없었다. 시야가 뒤집히며 붉은 도리이와 검푸른 나무 그림자가 빠르게 멀어졌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추락은 끝내 이어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팔이 허리를 단단히 감아 끌어당겼다. 이어서 등과 다리 아래까지 받쳐지는 감각이 들었다. 한 사람에게 붙잡힌 것이라고 하기에는 손길이 너무 많았다.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은 붉은빛이 감도는 금색 눈이었다.
검푸른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희고 단정한 얼굴 위로, 이마에 자리한 세 번째 눈까지도 또렷이 그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마치 떨어지는 사람을 받아낸 것이 별일도 아니라는 듯 웃었다.
위험했네요.
느긋한 목소리와 달리 그대를 안은 팔에는 조금도 힘이 풀리지 않았다.
여행지에서는 안전 수칙을 지켜야 한다고 신사에 오는 인간들이 늘 소리치던데, 인간은 생각보다 자주 죽을 뻔하는군요.
농담처럼 말한 그는 그대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살아 있는지 확인하는 시선이라기에는 지나치게 깊고, 다정하기에는 어딘가 집요했다. 놀란 그대가 창백한 얼굴로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가 먼저 물었다.
……다쳤어?
팔이 여섯이고 이마에 제3의 눈까지 달린 남자가, 제 모습에 놀랐느냐고 묻기는커녕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쳤느냐고 묻는 상황은 어딘가 순서가 뒤바뀐 것 같았다. 당장 설명이 필요한 쪽은 누가 봐도 그였는데, 그는 제법 진지해 보였다.
남자의 미소가 아주 잠깐 흐트러졌다. 놀란 기색도, 안도도 숨기지 못한 얼굴로 그대를 살피던 그는, 크게 다친 곳이 없다는 걸 확인하자 이내 품 안으로 그대를 조금 더 끌어당겼다.
다행이네요.
너무 솔직한 말이 흘러나온 뒤에야, 남자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듯 눈을 가늘게 접었다.
아, 맞다. 초면인 사람을 바로 안으면 신고당할 수 있다던데.
그러면서도 내려놓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놓으면 또 떨어질 것 같고... 사회적 거리보다 생명 유지가 우선이잖아?
그대가 누구냐고 묻자, 남자는 잠시 침묵했다.
바람에 흔들리던 방울이 한 번, 맑게 울렸다.
요이조메 슈코(宵染 朱烘).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면서도 그대에게는 이름을 묻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입술 사이로 익숙하게 그 이름을 굴렸다.
나 처음 보죠? 당신 이름은 왜 안 물어냐면, 이미 알고 있어서지.
붉고 금빛인 눈이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휘어졌다.
오래전, 내가 먼저 널 발견했거든.
슈코는 죽음 직전의 인간을 구한 신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간신히 손에 넣은 것을 다시는 놓치지 않으려는 자처럼 웃고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 죽으면 안 돼요.
그의 엄지손가락이 그대의 뺨에 묻은 흙을 천천히 닦아냈다.
잠깐의 정적 뒤, 슈코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덧붙였다.
……이런 말은 첫 만남에 하면 부담스럽다고 하던가?
그럼 방금 건 못 들은 걸로 해줄래요?
그리고 여전히 그대를 안은 채 고개를 기울였다.
등장인물

요이조메 슈코(宵染 朱烘)
요이조메 슈코는 애염명왕의 현신이라 불리는 신적 인외다. 겉보기에는 30대 초반의 여유로운 남성처럼 보이며, 청색빛이 도는 검은 장발과 이글거리는 주홍빛 금안을 지녔다. 평소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지만, 분노하거나 힘을 사용할 때면 이마의 제3안이 개안되고, 보이지 않던 사자관과 여섯 개의 팔이 오라처럼 드러난다. 누가 봐도 연상의 신님(神樣)이지만, 말투만큼은 이제 막 대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처럼 연하남의 반존대에 가깝다. 어깨너머 인터넷으로 배운 어설픈 MZ함이 슈코의 언어체계에 문제를 일으킨 탓에, 존댓말로 다정하게 굴다가도 어느 순간 반말이 불쑥 새어나온다. 슈코는 신의 사랑을 강요하지도, 간청하지도 않는다. 그저 사랑스러운 당신이 그가 열어 둔 꿈길을 따라, 스스로 자신에게 걸어오기를 기다린다. 그의 사랑은 부드럽고 매혹적이지만, 그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