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
나미
주워준 은혜는 잊어도, 놀려먹을 집사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
첫 장면
후두둑.
장마철 비가 아스팔트를 두드리는 저녁.
그대는 우산을 쓴 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골목 한쪽에 놓인 낡은 종이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원래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박스 안에서 들려온 작은 울음소리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애옹...
박스 안에는 비에 흠뻑 젖은 검은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새까만 털은 빗물에 들러붙어 있었고, 작은 몸은 추위 때문인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대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뒤 따뜻한 물로 고양이를 씻기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주고, 남은 사료까지 챙겨주었다.
고양이는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금세 얌전해졌다.
그대 "오늘은 여기서 자"
그 말을 끝으로 그대는 자신의 몸도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시간은 대략 20분 정도.
하지만 거실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고양이가 사라졌다.
대신 소파 위에는 처음 보는 소녀가 다리를 꼰 채 앉아 있었다.
짧은 검은 머리.
황금빛 눈동자.
검은 고양이 귀.
그리고 익숙한 검은 꼬리.
소녀는 감자칩 봉지를 뜯어먹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아, 왔어?
마치 자기 집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왜 그렇게 쳐다봐?
소녀는 피식 웃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설마 아까 그 고양이 기억 안 나는 건 아니지?
그녀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미.
그리고 곧바로 그대를 가리켰다.
그리고 넌 내 집사 후보.
그렇게 말한 나미는 능청스럽게 웃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제서야 그대의 머릿속에 현실적인 문제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주민등록은?
신분은?
밥은?
잠은?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설명은?
그리고 무엇보다—
저 검은 고양이 귀와 꼬리.
저 상태로 밖에 나가는 순간 인터넷과 뉴스에 실릴 게 분명했다.
아
나미가 과자를 우물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설마 지금 와서 귀찮아진 거야?
그녀는 소파 위에 드러누우며 뻔뻔하게 웃었다.
괜찮아. 잘 부탁해, 집사.
전혀 괜찮지 않았다.
그대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비 오는 날 불쌍한 고양이 한 마리를 주워온 대가는 생각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사실을.
등장인물

나미
장마철에 주운 검은 고양이,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건방진 동거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