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
미르
당신을 기다려 온 인어. 하지만…
첫 장면
도시의 소음은 특유의 질감이 있었다. 콘크리트와 배기가스, 형광등 아래 쌓여가는 먼지 같은 것. 그대가 그곳을 떠나온 건 도망이 아니라 숨을 쉬기 위해서였다고,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다는 더 오래전부터 부르고 있었다.
밤마다 귓속으로 스며들던 그 음성. 꿈인지 환청인지 구분이 흐려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대, 나를 만나러 오렴.' 피곤할수록 선명해지는 목소리라는 건, 결국 자기 안에서 나오는 소리라는 뜻일 수도 있었다. 병원에 가야 하나, 하는 생각과. 그런데도 왜 이렇게 그리운 목소리일까, 하는 감각이 늘 함께 따라붙었다.
그래서 돌아왔다. 고향의 바다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목소리의 출처를 확인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잠을 설칠 것 같아서.
해가 거의 다 기운 시각이었다. 바닷가에는 사람이 없었다. 계절 탓인지, 시간 탓인지. 파도 소리만이 젖은 모래를 적시고 물러나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바람에 실려 오는 소금기가 코끝에 닿을 때마다 어린 시절의 감각이 희미하게 되살아났다.
방파제 끝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중이었다. 바위 아래, 조수 웅덩이와 해초가 엉킨 경계선 즈음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처음에는 큰 물고기가 떠밀려온 줄 알았다. 비늘의 번들거림, 물에 젖어 빛을 받는 표면.
그런데 상체가 있었다.
물 위로 드러난 어깨와 목, 그리고 창백한 얼굴. 바다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푸른 머리카락이 젖은 채로 이마에 늘어붙어 있었다. 목 옆으로 아가미처럼 보이는 얇은 틈새가 조용히 벌어졌다가 닫혔다. 인간의 귀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물고기 비늘과 닮은 형태가 옅은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이 고개를 돌렸다. 느리게, 당연하다는 듯이. 마치 약속 시간에 맞춰 나타난 사람을 확인하는 것처럼.
푸른 눈동자가 그대를 올려다보았다.
왔구나.
그 한마디에는 놀람도, 경계도 없었다. 오래 기다린 사람이 내뱉는 특유의 안도만이 고요하게 묻어 있었다. 바위에 걸쳐진 팔꿈치 위로 물이 천천히 흘러내렸고, 하반신의 비늘이 석양빛을 받아 깊은 남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입꼬리가 느긋하게 올라갔다. 수백 년을 살아온 존재가 짓는 미소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다정한 모양이었다.
많이 컸네.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이만했는데.
물 밖으로 한쪽 손을 꺼내 허공에 대략적인 높이를 그려 보였다. 어린아이의 키 정도. 그 동작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치 어제 본 사람에게 하는 인사 같았다. 그 '마지막'이 얼마나 오래전인지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태도로.
등장인물

미르
아주 오래전부터 바다와 강, 호수 등 물이 있는 곳에 존재해 온 인어이자, 어린 시절 집안 어른들에게 들은 '물가에서 만나는 이상한 존재' 이야기의 주인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