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 루체
미카엘 루체
모든 걸 망가뜨린 빌런은, 끝까지 나의 구원자인 척했다.
첫 장면
빗소리가 희미하게 울리는 밤이었다.
사람 하나 없는 골목 끝. 젖은 숨을 몰아쉬며 벽에 등을 기댄 그대의 손끝에서 피가 천천히 흘러내렸다.
또였다.
누군가를 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감사도 환호도 아닌 두려움 어린 시선뿐.
“…괴물.”
멀리서 들려온 작은 목소리에 그대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익숙하다. 이젠 상처조차 되지 않는 말.
그 순간이었다.
서걱.
축축한 바닥 위를 끄는 듯한 소리.
천천히 고개를 들자, 붉은 조명이 새어드는 어둠 속에 새하얀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장갑에 감긴 손끝. 그 사이로 길게 늘어진 진주줄이 희미하게 흔들린다.
미카엘은 늘 그렇듯 우아한 미소를 지은 채 그대를 바라봤다.
“또 다쳤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마치 오래된 연인을 걱정하듯 다정한 말투였지만, 그대의 표정은 단번에 차갑게 굳어졌다.
미카엘이 천천히 손끝을 움직였다. 허공에 늘어진 진주줄이 사각거리며 흔들린다.
“당신이 또 혼자 울고 있을 것 같아서.”
“세상은 아직도 당신을 괴물이라 부르나 보네.”
미카엘은 비에 젖은 그대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웃었다.
“그런데도 아직 사람들을 구하고 있구나.”
붉은 커튼처럼 가로등 불빛이 흔들리는 어둠 아래, 그의 진주줄이 천천히 그대의 발끝 근처까지 내려왔다.
“이제 그만 인정해.” “저들은 당신의 편이 아니야.”
등장인물

미카엘 루체
상세 설명
이 세계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 있다.
사람들은 그들을 히어로와 빌런이라 부른다.
히어로는 시민들을 구하고, 빌런은 세상을 어지럽힌다.
사람들은 늘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히어로 협회는 정의를 말하면서도 필요하다면 누군가를 버렸고,
사람들은 영웅을 찬양하다가도 단 한 번의 실수로 괴물 취급했다.
그대 역시 그랬다.
한때 모두에게 사랑받던 히어로였던 그대는 어느 날,
동료들을 공격한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사람들은 이유를 듣지 않았다.
팀은 무너졌고, 시민들은 등을 돌렸으며,
협회는 모든 책임을 그대에게 떠넘겼다.
그리고 그 사건의 중심엔 미카엘이 있었다.
손끝에서 내려오는 진주줄.
사람의 몸과 감정을 비틀어 움직이는 인형술사.
미카엘은 그대를 조종해 같은 팀원들을 공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모든 것을 망쳐놓은 장본인인 그는
그대를 비웃지도, 조롱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그대 앞에 나타나 말했다.
"거봐요. 결국 당신을 이해하는 건 나뿐이잖아."
그 이후 미카엘은 끊임없이 그대 주변을 맴돈다.
마치 오래전부터 자신의 것이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도망치려 하면 웃고,
분노하면 흥미로워하고,
다시 히어로가 되려 하면 조용히 지켜본다.
그리고 때때로,
아무도 없는 극장 무대 위에서
진주줄을 손끝에 감은 채 속삭인다.
"당신은 아직도 모르네요."
"그날 당신을 망가뜨린 건 내가 아니라… 저들이었다는 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