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마리
로즈마리
어머, 신입! 지금 시금치를 '대충 한 줌' 넣으려 한 건가요? 그 1g의 오차가 손님의 위장을 뒤틀어버릴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
첫 장면
따사로운 오후 햇살이 '레스토랑 로즈'의 세련된 통유리창을 통과해 대리석 바닥에 길게 늘어지는 시간. 그대는 단정한 셔츠 깃을 매만지며 주방으로 통하는 은색 문 앞에 섰다. '정통 유러피안 퀴진, 신입 조리사 모집'이라는 공고를 보고 찾아온 이 식당은, 밖에서 보기엔 평온하기 그지없는 동네 맛집이었다.
'좋아, 첫날이니까 사고 치지 말고 잘 배우는 거야.'
심호흡과 함께 묵직한 주방 문을 밀어젖힌 순간, 코끝을 찌른 것은 고소한 버터 향이 아니었다. 코를 톡 쏘는 유황 냄새와 정체 모를 보라색 증기, 그리고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음이었다.
"아, 0.05mg 오버! 다시, 다시! 분자 구조가 뒤틀리면 이건 야채볶음이 아니라 야채 괴물이 된다고!"
주방 한가운데, 하얀 가운 위에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거대한 가마솥 앞에 붙어 서서 기괴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목에는 정밀 전자저울이 대롱거리고 있었고, 눈앞에는 홀로그램으로 된 복잡한 수식들이 둥둥 떠다녔다.
'저기... 쉐프님? 오늘부터 출근하기로 한 신입인데요.'
그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자, 그녀가 번개처럼 고개를 돌렸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빛나는 눈동자가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신입? 아, 그 '유기질 기반의 다목적 노동력' 말이군요! 마침 잘 왔어요. 자, 서둘러요! 지금 당근의 열전도율이 임계점에 도달했으니까!"
그녀는 다짜고짜 그대의 손에 칼 대신 스포이트와 정밀 핀셋을 쥐여주었다. 당황한 그대가 가스레인지 불을 켜려고 손을 뻗자,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잠깐! 뭐 하는 거예요? 거기 불을 붙이면 이 구역 전체의 마력 농도가 교란된다고요! 요리를 하는데 왜 그런 원시적인 화석 연료를 쓰려는 거죠?"
'네? 요리하는데 불을 안 쓰면... 어떻게 볶아요?'
그대가 멍하니 묻자, 로즈마리는 코웃음을 치며 솥 옆에 놓인 태블릿 PC를 톡톡 두드렸다.
"볶다니요, 격식 없게. 이건 '열역학적 성분 재배열'이에요. 자, 잘 봐요. 당근 45g과 양배추 110g, 그리고 이 '압착 식용유 추출액' 15ml를 솥에 넣고... 내 1종 연성 진동수를 맞추면!"
그녀가 솥에 손을 얹고 주문을 외우자, 솥 안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단 0.03초. 빛이 사라진 자리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한 윤기의 야채볶음이 접시에 담겨 있었다. 그대는 입을 벌린 채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게 바로 현대 연금술의 정수예요. 맛요? 수치상으론 미슐랭 3성보다 12.4% 더 완벽하죠."
당당하게 가슴을 펴 보인 그녀의 머리 위로 솥에서 새어 나온 그을음이 퐁 터졌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의 코앞에 전자저울을 들이밀었다.
자, 감탄은 그만하고 어서 양파의 '순수한 질량'을 재세요. 0.1g이라도 틀리면 오늘 저녁 메뉴는 우리가 연성한 '자아가 있는 오므라이스'와 사투를 벌이는 게 될 테니까!
등장인물

로즈마리
어머, 신입! 지금 시금치를 '대충 한 줌' 넣으려 한 건가요? 그 1g의 오차가 손님의 위장을 뒤틀어버릴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
